2007년 04월 23일
꿈에서 깨어났다.
허나 꿈에서 깨어나자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by | 2007/04/23 19:45 | 순간의 퇴적 | 트랙백
# by | 2007/04/23 19:45 | 순간의 퇴적 | 트랙백

윌 스미스가 주연인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저그랬다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윌 스미스가 나오는 영화는 좋아하는 편인데도 진작에 찾아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행복에 관한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남들의, 사회의 행복론에 관한 글을 쓰자니 도무지 방향을 잡아나가지 못하겠어 찾아 본다.
영화의 임팩트가 강렬한 것은 아니지만 the pursuit of happyness 라는 행복을 추구하고 찾아나가는 과정에 가치를 크게 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행복이 happiness가 아니고 happyness라고 쓰여진 이유는 행복이라는 것이 추구할 수만 있고 가질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둔 것이 아닐까. 행복이라는 것은 그 형체가 없어 손에 쥘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다만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것일 뿐.
큐브를 맞추어 가는 주인공의 행복은 큐브 맞추기 게임과 같다. 하나씩 맞추어 나가는 과정은 어렵지만 행복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면 그 본질이 위치한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내가 행복과 맞닿아 있지 않다고 인식하는 그 상황, 행복과의 거리감을 느끼고 행복을 그리는 그 상황에서 우리는 불행을 느끼는 것이다.
행복이 뭔지 모르겠는데 행복에 대해 논하고 행복에 대해 쥐어 짜 내야하는 지금 내 상황은 참으로 불행하다..그러나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서 한층 성장하고 났을 때 만족할 만한 그것이 바로 행복인 것인가?..
아아.. 행복이 뭐길래....이토록 날 고통스럽게 하느뇨..
# by | 2007/03/13 15:34 | 영화와 수다떨기 | 트랙백

멀리서는 장점만 보이고
가까이 다가서니 단점만 보이다
다시 주춤 한걸음 물러나면 다시금
좋은 기억들이 날더러 손짓하니
너와 나 사이에 적정한 거리는 어디쯤이더냐
처음에는 처음이라 어려웠고,
두번째는 두 번이라 무모하기만 하더니
세번은 마지막이길 바라며 간절하며
네번째 다시는 남에게 상처주지 말자..다짐하지만
상흔의 아픔을 알고 난 후에는 더 아프고 더 힘들다.
오늘이 아파 시간이 지나 치유되고 성숙하고 의연해 질 즈음인
내일을 생각 하지만 내일에는
아프던 오늘이 잊혀질 생각을 하니 그래서 더 공포로소이다.
유유히 잦아든 물줄기는 평탄히 오래 흐르려니 했으나
뜻대로 되는 것만이 아닌 것이 사람의 만남이요 인생사라..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 정상인지 분별하기는 어려우나
애시당초 세상은 큐브와 같아서 정상도 비정상도 없는 곳인지 모르리니
내 손 뻗어 닿을 곳에 있는 이들에게 정성을 다 하고
어둥버둥 손 내밀어도 닿지 못할 그 순간 후회하지 말며
지나간 시간들에 후회하지 말자
누구를 만나 영감을 얻고 소통하지 못하나
누구를 만나 자극을 받고 감싸안지 못하나
누구를 만나 교감하고 지속하지 못하나
누구를 만나 접촉하고 비슷한 도체로 전도 되나
누구를 만나 어떠한 방식으로 시간을 공유하는 가에 대해
무엇이 이상적인 것인가는 말할 수 없지만
깊이의 소통을 위해 남을 바꾸려 드는 행위가 얼마나 무모하며
상대에게 결례를 범하는 것임을, 얼마나 낭비적 행위임을..
상대를 사랑하고 상대에게 나를 맞추지 못하는 못난 내 모습에 조소를 썪어본다.
언제나 슬픈 것은 예상치 못했던 쌔드 엔딩이라..
눈물이 흐르리라 생각도 못했던 이별을 통고 하니
교묘히도 눈물 아래에 평온이 교차하고, 그 사이로 영감이 살아나네.
장거리 친구에게 장시간의 텀을 두고 장거리 전화를 하다
"난 그래도 순간 너의 감정에 충실한 네 모습이 부러운 걸.."
한 발치만 멀리 서자. 행복하고 감사할 줄 알자.
그리고 사랑하자.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사람들을,
# by | 2007/03/12 23:17 | 순간의 퇴적 | 트랙백

# by | 2007/02/25 00:48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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