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깨어났다.

꿈 안에서는 그것이 현실인 줄 알았고 정상인 줄 알았다.

허나 꿈에서 깨어나자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by NⓞM | 2007/04/23 19:45 | 순간의 퇴적 | 트랙백

...




깊지도 넓지도 않은 이 세상에...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가진 자가 어깨 힘 주고 살아가는 세상,

내게 남은 것은 ..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by NⓞM | 2007/04/21 23:21 | 순간의 퇴적 | 트랙백 | 덧글(2)

행복을 찾아서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yness

나는 지금 행복이라는 녀석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녀석은 어디에 있는지 좀처럼 보이지를 않는다. 언뜻 눈 앞에 나타나 곧 붙잡을 것 같다가도 한발치 앞에 서 손을 뻗으면 그 녀석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행복이라는 그 녀석은 그냥 눈 앞에서 그를 따라 추구할 수 있기만 할 뿐 손으로 잡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은 사실 실재하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녀석이 아닐까?

요즘 '행복'이 시대의 화두이다. 연예인들은 줄지어 자살을 하고, 이에 대한 베르테르 효과로 자살률이 급증하며, 자살 시도 방법까지도 모방을 한다는 통계청의 자료까지 발표되고 있다. 물론 2005년 이후로 하루 33명이 자살을 하고 있다는데 최근들어 연예인 몇명이 목을 매었다고 해서 호들갑 떨 문제는 아니고 진작부터 고민했어야 할 문제였을 뿐이다. 한 사람이 목을 메고 한강에 뛰어들었을 때는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이지만 그를 보고 용기를 얻어 열 사람이 손목에 칼자국을 긋고 아흔 아홉명이 약을 먹고 나머지 한명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면 이는 한번도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 조차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살에 대해 '어디 나도 한번?'이 될 수도 있고 '아니 도대체 왜?'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 그 끝에 있는 자살. 이러한 사회 문제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는데  나는 도무지 써 내려 갈 수가 없다. 단 한 줄 이상 써 내려갈 수가 없다.

제출용 원고라 생각을 하니 마치 무언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거창한 내용들이 들어가야 할만한 그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아 두줄을 써 내려가지 못하겠다. 그러자니 자꾸 스트레스는 받고 원고 마감 기한은 지나가고 눈치는 보이고 스트레스는 싸이고 머리는 아파오고. 여러가지 문제들로 지끈거린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행복의 철학에 대해 말했다는데, 긍정의 심리학, 행복의 철학, 행복론 이런 책들을 열어놓고 있자니 명백한건 그들은 행복한 상태에서 행복의 철학에 대해 주섬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의 꼬리를 찾아 행복하고 싶어서 노력하려고 하는데 마치 행복이 빠진 내 인생에서 행복을 찾기란 그 자체가 불쌍해서 못봐주겠다는 것이고 행복하려는 몸부림 자체가 처절해서 거울을 깨 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윌 스미스가 주연인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저그랬다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윌 스미스가 나오는 영화는 좋아하는 편인데도 진작에 찾아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행복에 관한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남들의, 사회의 행복론에 관한 글을 쓰자니 도무지 방향을 잡아나가지 못하겠어 찾아 본다.

영화의 임팩트가 강렬한 것은 아니지만 the pursuit of happyness 라는 행복을 추구하고 찾아나가는 과정에 가치를 크게 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행복이  happiness가 아니고  happyness라고 쓰여진 이유는 행복이라는 것이 추구할 수만 있고 가질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둔 것이 아닐까. 행복이라는 것은 그 형체가 없어 손에 쥘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다만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것일 뿐.

큐브를 맞추어 가는 주인공의 행복은 큐브 맞추기 게임과 같다. 하나씩 맞추어 나가는 과정은 어렵지만 행복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면 그 본질이 위치한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내가 행복과 맞닿아 있지 않다고 인식하는 그 상황, 행복과의 거리감을 느끼고 행복을 그리는 그 상황에서 우리는 불행을 느끼는 것이다.

행복이 뭔지 모르겠는데 행복에 대해 논하고 행복에 대해 쥐어 짜 내야하는 지금 내 상황은 참으로 불행하다..그러나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서 한층 성장하고 났을 때 만족할 만한 그것이 바로 행복인 것인가?..

아아.. 행복이 뭐길래....이토록 날 고통스럽게 하느뇨..

 

 

 

 

 





 

by NⓞM | 2007/03/13 15:34 | 영화와 수다떨기 | 트랙백

가까이, 혹은 멀리..





 

멀리서는 장점만 보이고

가까이 다가서니 단점만 보이다
다시 주춤 한걸음 물러나면 다시금

좋은 기억들이 날더러 손짓하니
너와 나 사이에 적정한 거리는 어디쯤이더냐

처음에는 처음이라 어려웠고,
두번째는 두 번이라 무모하기만 하더니
세번은 마지막이길 바라며 간절하며
네번째 다시는 남에게 상처주지 말자..다짐하지만
상흔의 아픔을 알고 난 후에는 더 아프고 더 힘들다.

오늘이 아파 시간이 지나 치유되고 성숙하고 의연해 질 즈음인
내일을 생각 하지만 내일에는

아프던 오늘이 잊혀질 생각을 하니 그래서 더 공포로소이다.

유유히 잦아든 물줄기는 평탄히 오래 흐르려니 했으나
뜻대로 되는 것만이 아닌 것이 사람의 만남이요 인생사라..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 정상인지 분별하기는 어려우나

애시당초 세상은 큐브와 같아서 정상도 비정상도 없는 곳인지 모르리니
내 손 뻗어 닿을 곳에 있는 이들에게 정성을 다 하고
어둥버둥 손 내밀어도 닿지 못할 그 순간 후회하지 말며
지나간 시간들에 후회하지 말자


누구를 만나 영감을 얻고 소통하지 못하나
누구를 만나 자극을 받고 감싸안지 못하나
누구를 만나 교감하고 지속하지 못하나
누구를 만나 접촉하고 비슷한 도체로 전도 되나

누구를 만나 어떠한 방식으로 시간을 공유하는 가에 대해
무엇이 이상적인 것인가는 말할 수 없지만
깊이의 소통을 위해 남을 바꾸려 드는 행위가 얼마나 무모하며
상대에게 결례를 범하는 것임을,  얼마나 낭비적 행위임을..
상대를 사랑하고 상대에게 나를 맞추지 못하는 못난 내 모습에 조소를 썪어본다.

언제나 슬픈 것은 예상치 못했던 쌔드 엔딩이라..
눈물이 흐르리라 생각도 못했던 이별을 통고 하니  
교묘히도 눈물 아래에 평온이 교차하고, 그 사이로 영감이 살아나네.


장거리 친구에게 장시간의 텀을 두고 장거리 전화를 하다
"난 그래도 순간 너의 감정에 충실한 네 모습이 부러운 걸.."

한 발치만 멀리 서자. 행복하고 감사할 줄 알자.
그리고 사랑하자.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사람들을,



 

by NⓞM | 2007/03/12 23:17 | 순간의 퇴적 | 트랙백

나의 스물 넷




나의 스물 넷은 가고 스물 다섯의 해가 왔다. 그 무엇 때문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나 수 개월간 나는 나 자신과의 내적 토의를 거치지 못했고 쏟아내고 정리하지 못했다. 분명한 건 나는 한동안 자동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automatic writing과정을 겪다 어느 순간 그 쓰기를 그치지 못하던 연필을 잃어 버린 듯, 할말도 없었고 무언가 말해야, 무언가 써야 하지만 실어증에 걸린 환자 마냥 말하는 방법을 잃었었다. 그 공백안에서 나는 '이것이 행복인 것인가?'라는 기분도 잠시간 맛 보았지만 이건 분명 내가 아닌 나, 새로운 내가 되는 과정이기도 했고 잔혹스럽사리 만치 나를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분명한 건 나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일수도 있다. 그리 바빴던 건 아닌데, 그리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건 아닌데....

스물 넷. 나의 스물 넷 그 시절엔 23년간 알지 못했던 내 인생의 행복을 깨달았다. 그 행복감이란 결코 불행하지는 않으나 행복하지는 않았던 내 인생의 엉켜있는 부분을 적나라하게 간파하게 되면서 그 환부에 대한 진단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직시하기 위해 나는 많은 것을 잃어야 했고, 많이 아파야 했지만, 그 고통안에서 나는 행복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걸고 자신있게 해 내야만 한다라는 것을 깨달았고, 아직 이룬 것은 없지만 남 앞에 자신있게 '이것만은..'이라며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내었다.

인생, 남보다 조금 뒤쳐지더라도 남들 눈치보며 남들 템포에 맞춰 가다간 곁다리 인생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교훈을 체득하게 되었다. 많이 아팠고, 많이 다쳤지만, 이제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픈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물 다섯 부터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한 조각을 머금어 본다.

 

 






 

by NⓞM | 2007/02/25 00:48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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